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공간 '신여성'에서 만나요 📢 신여성 8월 소식 전해드려요!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포르노를 사유하는 세미나, 내 안의 내밀한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에세이 워크숍, 시 창작을 위한 기록을 공유하는 모임 등이 열립니다.
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공간 신여성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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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보여주는데 왜 알 수 없을까-정신분석과 포스트 포르노, 네 번의 응시 (희음, 혜수) ✔️ 일상과 시 (윤은성) ✔️ 치명적 에세이 17기 (배윤민정) ✔️ 온라인 소리내어 글쓰기 - 마음을 다 쏟은 다음 (배윤민정) ✔️ 작업 모임 ✔️ 신여성 멤버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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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란 뭘까? 여러 정의가 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는 충동이라 했고(린다 윌리엄스는 이를 “보이는 것의 광란”이라 불렀다), 누군가는 성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폭로하는 장치라 했다(프레시아도는 “딜도가 페니스보다 먼저다”라고 썼다). 누가 어떻게 정의 내리든, 포르노가 성을 재생산에서 떼어내 우리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는 욕망 앞에 데려다 놓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한국사회에서 성을 말하는 일은 언제나 논쟁이었다. 노동이냐 착취냐, 해방이냐 타락이냐. 그런데 그 팽팽하던 말들이 유독 ‘포르노’ 앞에서만은 얼어붙는다.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답이 거기에 놓인다. 그 우려엔 근거가 있고, 주류 포르노가 그 취약함을 이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포르노라는 형식일까? 여성이 언제나 이미 서 있었던 자리 때문은 아닐까? 더 적은 일자리, 더 좁은 선택지, 더 쉽게 지워지는 목소리 말이다. 오염된 것은 섹스도, 욕망도 아니고 그걸 담아온 그릇이다. 포르노를 그 그릇과 묶어 통째로 외면하는 순간, 이 영역은 그것을 더럽힌 자들의 것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포르노는 뜻밖의 친구를 만나는데, 그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끝내 다 알지 못한 채 그저 이끌린다. 정신분석은 그 ‘알 수 없음’을 읽으려는 시도다. (포스트) 포르노는 그 ‘알 수 없음’을 이미지로써 추적하려는 또 하나의 시도다. 오랫동안 포르노가 남성의 전유물처럼 이야기되어 왔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여성과 퀴어, 혹은 병들고 아픈 몸으로 포르노를 사유한다는 것을 정신분석을 통해 함께 더듬어보려 한다.
매 회차,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포스트) 포르노 단편 영화를 이끔이가 주제에 맞게 한 편씩 골라 함께 본다. 어디서도 쉽게 닿을 수 없는 이 화면들을, 착취라는 프레임 바깥에서 성을 사유하려는 사람들과 나란히 보고 이야기하는 자리다.
— 희음, 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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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에세이 쓰기>는 쓰고 싶지만 쓰기 힘든 이야기, 글로 쓰는 순간 평가와 비난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려운 이야기, 나를 치명적으로 흔들고 지나간 삶의 경험에 대해 에세이를 쓰는 워크숍입니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솔직하게, 과감하게, 집요하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들은 함께해요.
세상의 통념으로부터 더 멀리 나아가는 글을 지향합니다. 괴팍하고 삐뚤어진 글쓰기에 목마른 분들, 에세이 쓰기의 갈등과 힘겨움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나고 싶은 분들을 기다립니다.
— 배윤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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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친구들의 글
<소리내어 글쓰기 - 낭비 연습>에서 쓰고 나눈 글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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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는 아이 (뭉치)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다. 아기랑 처음으로 함께하는 비행기 여행. 평소라면 좋아하는 책을 펼쳐 예쁜 문장들에 젖어들거나 창밖 구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텐데, 아기가 조금이라도 낑낑거릴까 비행 내내 품 안의 아기만 어르고 달랬다. ‘6개월짜리 애기를 데리고 도대체 왜 해외여행을 가는거냐’는 커뮤니티 글들과, 아기와 함께 비행기에 탄 어느 커플이 주변 승객들에게 혹시나 모를 불편에 양해를 구하는 쪽지와 함께 간식들을 나눠줬다는 일화가 계속 생각났다. 아기를 키우는 건 내가 ‘맘충’인지 아닌지를 매 순간 검열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아기가 두 시간을 내리 푹 잤다. 그 덕에 배우자와 영화도 보고 석양이 지는 하늘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품 안의 아이를 달래다 문득, 나도 아이였던 시절의 비행이 떠오른다. 나는 울지 않고 의젓하게 비행을 즐기는 여행자였다.
방학이 되어 아빠를 만나러 갈 시기가 오면 종종 비행기를 탔다. 항공사에는 공항까지만 보호자가 동행하면 되고, 나머지 수속은 승무원이 맡아주는 서비스가 있다. 아빠와 엄마가 헤어진 후, 방학이면 나와 동생은 비행기에 태워 서로에게 보내지곤 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겨우 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된 동생 손을 잡고 씩씩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을 따라 얌전히 비행기 탑승구로 향하면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탑승을 기다리는 또래 아이들을 바라봤다.
‘쟤네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는데도 왜 저렇게 떼를 쓸까. 내가 쟤네라면 정말 착하게 굴 텐데.’
질투가 나는 마음조차 버거워서 우월감으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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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글쓰기 모임 동료들에게 어른으로 사는 삶의 고통을 토로한 후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방금 반전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삶을 깨도 깨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임에 비유했었는데, 그 어려워지는 단계의 배후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엥? 뭐라고? 내가 최종보스인 신자본주의나 백인우월주의, 여성차별적 가부장제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최종보스 왤케 많아?) 나도 작지 않은 보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름하여 용사보스! 용자가 용사라니 ㅎㅎ
이 보스의 문제는 용감한 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첫째, 안전해 보이는 공간을 찾아 조용히 산다. 두 번째, 동료를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난다. 나는 30대까지만 해도 첫 번째 길을 택한 사람이었다. 구직, 직장생활, 새로운 구직을 반복했고, 나와 사진관 가족사진 같은 가족을 꾸릴 남자 배우자를 찾아 연애를 반복했다. 그 와중 석사학위를 두 개나 땄고, 이것저것 경험치를 쌓았지만,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제발 안전하길 기도하며 굴을 더 깊게 파고, 돌담을 더 높게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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