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나와 우는 우는』 북토크,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세미나 등이 열립니다! 📢 신여성 4월 소식! 『우는 나와 우는 우는』 북토크,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세미나, 페미니스트를 위한 비폭력대화 연습, 소설 쓰기와 온라인 즉흥 글쓰기 워크숍이 열립니다. 매주 1회 신여성에서 함께 작업하는 모임도 이어지고 있어요. 4월에도 신여성에서 함께 글 쓰고 대화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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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나와 우는 우는』은 장애를 가진 몸과 함께했던 삶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사랑과 돌봄, 실패와 후회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책입니다. 선뜻 그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공회전을 반복하는 실패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미처 가보지 못한 사랑과 돌봄의 가능성 언저리를 만져보려 합니다.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가슴 치느라 가슴팍에 푸른 멍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사실은 그럴 능력도 깜냥도 가져본 적 없었던 사람들, 그리로 가면 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더 나쁜 쪽으로만 자신을 데려갈 수밖에 없었던 기진하고 체념한 사람들의 편에 서기 위해”.
— 하은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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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단지 성공을 위한 발판에 불과할까? 실패 그 자체에 깃든 힘은 없을까? 『여성의 남성성』(1998)으로 우리에게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흥미롭고도 급진적인 통찰을 제기해주었던 잭 핼버스탬의 신작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현실문화, 2024)을 통해 위 질문들을 함께 논의해봅니다.
각종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을 신나게 경유하면서 뻗어나가는 핼버스탬의 거침없는 비판적 사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우리에게 ‘극복’의 대상이었던 실패와 부정성이 특히 퀴어와 페미니즘의 자장 안에서 어떻게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일 수 있는지, 깔끔하게 봉합되거나 정돈될 수 없는 ‘혼란’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실천적 의미를 진지하게 모색합니다.
‘실패자’로서 우리는 어떤 존재들일까요? 우리의 ‘실패한’ 삶은 어떤 의미와 정치적 실천, 그리고 효과를 발생시킬까요? 이론과 비평이 삶의 실제적인 힘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하실 분들을 초대합니다.
— 전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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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OO하기 13기 : 소설로 용서하기 (김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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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을 통과해 상호의존과 얽힘과 해방으로 세미나 (희음) |
소리내어 글쓰기 : 내가 좋아, 내가 싫어 (배윤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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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여성-생태 연구 세미나> 프로젝트는 책 읽기와 토론, 글쓰기, 여성농민공동체 견학을 통해 먹거리 및 생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결을 찾는 프로젝트였어요. 이는 자본주의와 추출주의, 나아가 가부장제라는 이 사회의 일그러진 구조와 이데올로기, 시장 시스템이 박탈한 연결과 돌봄의 상상력을 복원해보자는 강한 바람에서 시작된 기획이었죠. 이 마음을 더욱 사소하고도 다정한 장소로 데려와 더욱 일상적인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 또 다른 모임을 기획해봤어요.
언니네텃밭에서 구매한 농산물로 저희가 차린 채식 밥상을 나누어 먹고, 준비된 미니북을 매개로 먹거리와 식량주권, 농생태학과 기후정의,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자리입니다. <자본-여성-생태 연구 세미나>에 참여한 분들, 참여하지 않은 분들 모두 신청 가능하니 궁금해하는 마음과 허기진 뱃속만 준비해오시면 됩니다. 환하게 기다릴게요!
[진행 순서]
1. 언니네텃밭에서 구매한 농산물로 만든 채식 밥상 나누어 먹기 * 채식 밥상 메뉴: 잡곡밥, 시레기 된장국, 두부 두루치기, 봄쪽파시금치무침, 메주콩 콩장 * 언니네텃밭 식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메뉴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2. 미니북을 바탕으로 이야기 나누기
* 미니북은 현장에서 나누어드립니다. [장소] 슬금슬금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75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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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친구들의 글
<땅으로부터 식탁까지, 연결과 돌봄의 상상력을 복원하기 세미나>에서 탄생한 글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여성재단 콜라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서대문공동체라디오, 자본-여성-기후 연구 세미나, 신여성이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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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의 경제 모델’ 끌어내리기 - 반다나 시바의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리뷰 (희음)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마음에 못처럼 박힌 게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알지 못했던,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 죽음을 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내가 그 무수한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내가 그 죽음들에 조금쯤은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나 역시 삶보다는 죽음 쪽에 더 가까이 서 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했다.
1984년 12월, 인도 보팔에 있는 농약 공장에서 가스 유출 사고가 있었다. 유출이 일어난 건 딱 40분이었다. 그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3천 명이 사망했고, 이후로도 3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공장 주변 마을의 2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은, 살아남았더라도 영구적인 후유증으로 인해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죽은 동물들은 셈해지지도 못했다. 길거리에 사람과 동물의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통곡과 비명이 시체의 틈새를 메웠다. 세계 최악의 대참사였다. 농약 제조에 쓰이는 독성 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 메틸이 죽음을 일으킨 핵심 물질이었다.
공장 운영 주체인 유니온 카바이드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은 수십 년에 걸쳐 이어졌고 2010년에야 최종 판결이 났다. 참사 당시의 경영자 7명이 업무상 과실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형량은 고작 징역 2년에 벌금 2천 달러였다. CEO인 워런 앤더스는 고발당했지만 인도 법정에 세워지지조차 않았다. 미국이 인도 정부의 송환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유니온 카바이드를 인수한 다우는, 이에 항의해 비폭력 시위를 하는 활동가들을 오히려 줄기차게 법정에 세우며 가해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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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버섯 넣을 자리가 없다 (자바)
버섯을 사러 집 앞 ‘식자재 할인 마트’에 들렀다. 이곳은 반년 전까지 다이소가 딸린 대형 마트였다. 찍어낸 듯 똑같이 생긴 과일, 채소들이 매대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가공식품들이 하얀 포장지에 감싸져 빨간 글씨로 '온리프라이스'라고 적혀있었다. '온리프라이스'는 롯데마트에서 자체적으로 출시한 PB상품으로 타 업체보다 저렴했다. 저렴한 가격은 자본주의에 허덕이는 자취생에게 가장 중요한 상품의 가치였다. 고민 없이 거대한 진열대 앞에서 빠르게 물건을 골라 샀고, 바쁘고 지친 손으로 반도 안 쓰고 버렸었다. 무르고, 썩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서.... 다듬어 본 적 없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면, 아까움보다는 역시 사서 먹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무슨 요리를 해? 끼니에 한 시간 이상 여유를 내어줄 수 없었다. 원룸 가득 채우는 음식 냄새가 옷과 다른 물건들에 베이는 게 싫었다. 허기를 때우기 위해 대충 먹는 음식에는 음미도 향도 없었다.
버섯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건 석 달 전이였다. 계속 오르는 물가와 그래서 줄이고 갈아 써야 하는 시간에는 도저히 미래가 들어갈 자리가 안 보였다. 이대로 가다간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폭이 점점 줄어들 게 뻔했다. 회복성도 연결성도 채 느껴보기 전에 제풀에 지칠 것 같았다. 당분간 일을 줄이더라도 시간을 갖고 자기돌봄으로 요리를 다시 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가본 마트는 식자재 할인 매장으로 바뀌어있었다. 로고송과 대중음악이 아닌 트로트와 라디오가 틀어져 나왔다. 매대에는 각진 채소, 과일 말고도 못난이라 불리는 아이들도 함께 판매되고 있었고, 직거래하는 채소들이 흙이 묻은 채 수북이 쌓여있었다. 땅의 온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같은 가격에 크고 알찬 걸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살펴보고 눌러보기도 하며 천천히 둘러봤다. 원으로 배배 꼬인 가지와 얼굴 크기만 한 애호박이 신기해 장바구니에 넣었다. 자랄 때부터 곧은 일자인 줄 알았는데, 사람도 그렇고 자연스러운 모든 것에는 각자의 태가 있었다. 각양각색의 채소 틈 사이로 옅은 바람이 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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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 그리고 자본-여성-생태연구 세미나 (장수정)
1.
나는 도시에 사는 것이 좋다. 도시에 사는 내가 늘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사는 오래된 동네의 다정다감한 풍경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도시 사람들의 적당한 무관심이나 상대방과의 거리가 좋았다. 도시를 헤매며 만난 수많은 풍경이나 도시가 주는 각종 편의를 사랑하기도 한다.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럽다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으로 사회화되었고, 어찌보면 지역운동을 12년째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성향은 바뀌지 않고 있다. 사무실은 중심으로 지역활동은 하지만 살고 있는 집은 절대 주변 사람들에게 오픈하지 않는 나만의 거리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시적인 것들만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20대부터 활동을 해오며 평택 대추리나 양평 두물머리 투쟁에 함께 하면서 어렴풋이 농사와 관련한 감성들에 스며들어 있었고 파업을 하는 공장이나 다른 투쟁현장 보다는 농촌공동체의 투쟁에 조금 더 익숙한 감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농촌에서 농사를 하거나 할 생각은 못하지만 농촌 언저리에서 내 업과 관련된 활동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정도의 정서를 장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걸까?
나는 결국은 도시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20대에 만난 주변 친구들처럼 내가 다닌 학교의 특성상 활동가를 꿈꾸거나 대안적인 활동을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귀촌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며, 그 당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몇몇의 남성들이 귀촌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아쉽긴 했지만 그 다음의 무언가로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없어져 버리곤 했던 것도 바로 도시 사람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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